너무 뒷북이라서 리뷰라고 말하기도 어색할 지경이다.
그런데 한번 날 위해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무척 많이 보았다. 실은 아주 명료한 영화이다. 모호한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게 약점이 될 만큼 명료하고 또 명료하다.
영화 유전은 하나의 완벽한 영화적 세계를 창조했다. 그 세계의 단단함이, 그 결집성이 영화가 가진 힘인 동시에 허구의 세계 바깥으로의 출입을 거부케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유전은 그토록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 빈틈없이, 허점없이 영화라는 장르 그 안에 소속돼 있다......
유전은 초반에 주연인 토니 콜렛의 어딘가 들뜬 것만 같은, 나에게는 억지스러운 연기가 지속적인 감상을 방해했다. 그 느낌은 아직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워낙 험한 역할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혼신의 힘을 다한 그녀의 연기가 마침내는 영화를 통해 승리하는 과정이 점차로 내게도 전해졌다.
두세 번 관람을 포기한 끝에 결국은 눈을 떼지 않고 비밀을 캐게 만들었던 건, 바로 이 대목부터였다. 아들 피터가 엄마와 나누는 첫 대화. 찰리를 파티에 데려가라 했던 그 씬이다.
"술은 안 마시니?" 엄마가 묻자,
"마시고 싶어도 살 수 없는데요?"
"그냥 마실 거냐고 묻는 거야."
"안 마신다고 대답한 건데요?"
기억이 정확한진 모르겠지만 이런 내용이다. 난 왜 이런 대화에 접착제마냥 끌리는지. 거기서부터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감독의 말에 집중했다. '이 감독은 생각보다 훨씬 영리한 것 같아.'
하나의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의 이어짐이 이토록 매끄러우면서도 숨가쁠 수 있다니. 여러 면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나, 인물들의 내면을 반영한듯 하나같이 음산하다 못해 왜곡돼 있는 인물들의 외형도 미국영화치곤 희귀하다 느껴졌다. 이런 장치는 일본영화에서 흔하니까. 우스꽝스러울 만큼 그네들은 배우의 안색을 죽게 만들고, 옷소매에 꾀죄죄한 흔적을 새겨 넣는다.
엄마와 피터의 대화 씬을 빼고도 좋았던 건 또 있다. 디오라마에서 현실 속 피터의 방으로 전환되는 첫 장면. 내 이제껏 보아왔던 영화들 가운데 손꼽을 만한 첫 장면이라 말할 수 있다. 그 장면이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아 결국엔 영화 전체를 통째로 감상하게끔 되곤 했다.
그와 흡사한 재능기부는 찰리의 장례식에서도 이어진다. 관이 땅 속에 묻히고, 그 땅 속의 단면이 화면 하단을 차지할 때 감상자로서 내 심장은 쫄깃했다.
흔히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영화들을 보면 다른 평범한 영화들의 서너 배에 해당하는 분량이 농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전도 물론 그러하다.
그러나 전혀 흠을 잡을 수 없는 것만은 아니다. 두 번의 영매 장면이 조금은 그러한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납득한다. 그러고보니 혼을 잘못 불러와서 곤욕을 치르는 전개가 흔하다면 흔하다. 곡성도 그랬고, 넷플릭스 베로니카도 그랬다. 이 부분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오컬트의 성패가 달려 있다.
기본적으로 오컬트 장르는 인간의 나약함을 전제로 할 것이다. 하지만 엑소시스트(1973년)에서는 작은 승리를 거두었고, 찾아보면 다른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악마의 씨는 악마의 일방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그러나 필연적으로 아리 에스터 감독의 공포는 악마로부터 인간에게로 옮겨가리라는 게 내가 느끼는 전망이다. 물론 그가 계속해서 오컬트에 충실한 감독으로 남아 주길 바라지만.
덧붙이자면, 이 영화 네 명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목소리가 그윽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피터. 알고보니 그는 록 밴드 겸업이라나......
또 말하고 싶은 게 뭐가 있을까? 찰리를 연기한 배우, 영특할 정도로 연기파이다!
만약 시간이 흘러 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바뀐다면 어떤 세상이 올까? 혹은 이미 그 세상은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모르는 곳에서 서서히 옷이 젖어들 듯 악은 선에 뒤섞여 물들이고 있다. 그러한 전제를 부정하더라도 악의 어느 면은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만들곤 한다.
압도적인 전지전능함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결코 사라지지 않고 냉혹한 시선을 우리로부터 거두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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