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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공포

영화 경고 caveat - 미지에 도사린 긴장감

 

 
 
이번에도 나 혼자보는 리뷰다. 아일랜드 영화라고 한다.
 
사실 그리 집중해서 보지도 못했는데, 엔딩이 올라가고 낮잠도 한숨 자고 일어난 후에 어쩐지 여운이 가시질 않아 몇 글자 끼적여 본다.
 
 
매우 독창적인 영화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낯섦이야 말로 아메리카에 젖어 지낸 우리네에게 던져지는 유럽의 힘이다! 그 힘은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대담함으로부터 비롯된다. 곧 미지(未知)를 말함이다.
 
첫째, 대화가 많지 않다.
 
이것이 기억에 관한 영화이므로 그렇다. 하지만 기억에 관한 영화라 해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니, 감독의 모험 혹은 도발로서 받아들인다. 익숙한 대화, 흘러가는 잡담에 지친 사람이라면 충분히 환영할 만하다. 
 
둘째,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줄 시각적인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우중충한 인물들, 집이라기보다는 일정한 목적을 가진 듯이 보여지는 폐가, 주변을 에워싼 잡초들. 게다가 감독은 이 위에 부패되는 시간마저도 공들여서 입혔다. 당연히 보는 내내 기분은 불길해진다.
 
셋째, 이전에는 찾아보지 못한 여러 장치들이 낯섦과 함께 오금을 저리도록 만든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하실, 마치 저세상으로 이어지듯 새까만 심연에 잠겨 있다. 둥그런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고, 감지하고 달아나려 든다. 집 반경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고안된 사슬 조끼, 아버지와 엄마 딸로 이어지는 미스터리한 멸망담.
 
그밖에 무기력하고 갇힌 듯한 인상을 풍기는 주인공, 이 모두를 포함하여 일관되고 치밀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감독의 역량......
 
이 정도로 요약될 것이나 애초에 끙끙대며 쓰려 한 건 아니니 다만 '감탄사' 하나를 첨가한다. 상당히 괜찮단 말이다. 굳이 중심적인 느낌을 추출하자면 '폐소공포'이다. 보트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 지하실, 병적 세계에 잠식당한 딸, 사고로 기억을 잃고 수동적으로 제의를 받아들이는 주인공. 폐소공포로 인해 자살했다는 아빠. 
 
이 모두가 합쳐져 빠져나갈 길 없는 우리 속으로 관객을 몰아 넣는다.
 
삼촌은 말한다. "형이 내가 하는 일을 알아."
 
그것이 그가 형을 죽이려는 이유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내가 하는 일'은 무얼까? 
 
죽은 형과 아우(삼촌)는 석궁으로 여우 사냥을 즐기던 사이다. 그런 아우와 함께 물들어서 지내던 주인공. 이들의 사연은 각각의 사진들로만 설명된다.
 
이쯤. 굳이 해석을 덧붙이자면, 삼촌은 비밀스런 행위가 발각되지 않도록 형 일가를 해쳤다. 그 비밀은 아마도 조카와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주인공을 함정으로 밀어 넣는다.
 
그 과정에서 여러 반전들이 존재한다. 각본의 참신성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해선 안 될 일을 저질렀던' 사람들의 후일담이다. 그들을 향해 던져지는 날카로운 경고.  
 
어느 면으론 꽤나 패기 있는 도전이라고도 보인다. 
 
낱낱이 지닌 비밀 이상으로 관객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은 전체 서사를 아우르는 분위기에 있다. 차츰 이야기를 벗어나 살갗을 더듬으며 오는 공포의 촉수. 거대한 틀 안에서 갇혀 허우적거리는 절망감이 아스라한 유년에 깃든 여우의 비명소리를 기억 바깥으로 떠올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