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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공포

영화 난 연쇄살인범이 아니다- 성장기와 마주친 시리얼킬러

 

영화 난 연쇄살인범이 아니다: 성장기와 만난 시리얼 킬러

 

근래 봤던 영화들 가운데 베스트 오브 베스트. 밑져야 본전 식으로 아무 영화에나 들어갔는데 우연히도 황금밭이었다! 넘치는 건 철학과 재기와 새로운 관점, 부족한 건 아쉽게도 '없었다'. 아, 제목이 다소 뜬금없었달까?

 

이 제목을 TV에서 검색으로 치면 "무서워요."라는 음성 정보가 되풀이된다. 어찌된 일이지? 하고 헛발질을 계속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는 연쇄살인범이 아니다'로 검색했던 것. 제목은 나는,이 아니라 난, 이다. '난 연쇄살인범이 아니다'. 아무튼 이 제목 덕택에 주인공이 연쇄살인범으로 누명을 쓰지 않을까 시종일관 가슴을 졸여야 했으나, 그런 내용은 아니었다. 찌르는 듯한 이 제목은 국내에서 잘 먹히지 않았던 걸까? 이리저리 둘러봐도 그리 큰 호응은 얻지 못한 것 같다. 본토에서는 모르지만 우리 실정으로는 다소 싸구려 필이 나는 게 사실이다. 연쇄살인범 운운하는 제목은.

 

영화를 발견하는 것은 일차로 관객이나, 이차로는 영화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영화의 드문 융합 작용으로 관객의 내면을 발견해주는 일이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날카로운 메스로 내면의 세포를 말끔히 도려내어 무대 위로 내던진다. 꿈틀거리며 이전의 나와 합체하려는 노력은, 그렇지만 안 될 말이다. 이미 예전의 나와 결별을 고한 나. 그의 매력, 냉소, 멋쩍음. 배우를 꼭두각시로 조종하는 감독의 능력에 반했다. 그 연금술의 결과로 탄생한 또 하나의 경이로움.

 

꼭꼭 암기해두고픈 세 대목의 대사가 나온다. 존과 심리학자의 대화(차도를 건너는 여자를 보며), 크롤리의 독백, 존과 심리학자의 대화(문제가 생길 때 왜 달아나지 않는가의). 효율적이며 잘난 체하지 않으며 깊이감으로 채워진 대사는 충분히 날 들뜨게 한다. 윌리엄 블레이크. 가물가물하던 시인의 이름을 명시해주어 좋았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존과 연쇄살인범 크롤리는 결국 하나의 인물임을. 존은 크롤리를 제거해야 할 사명을 지녔지만, 크롤리는 과연 우리가 알던 그 연쇄살인범의 전형이었나? 답은 노. 우선 그는 여자나 어린이를 살해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젊고 건강한 대상을 살해했다.

 

재미있는 것: 영화는 연쇄살인범의 새로운 유형을 탄생시켰다. 자신의 신체 일부 혹은 장기를 대체할 수단으로서의 (시대적 추이에 따른) 살인. 나아가 먼 과거로부터 인간의 공포심에 의하여 배양된 무엇, 측정하기 힘든 전설(관념)로서의 살인이라는 설명을 접목했다.

 

물론 이 영화를 지루해 할 사람도 없지 않으리라. 어느 촌동네, 괴롭힘 당하는 소년, 죽음을 가까이 둔 노인이라는 '화려함'과는 사뭇 거리가 먼 설정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경박함과도 거리가 멀다. 한 일억 광년쯤?

 

내면을 들여다보라. 작은 존 한 명쯤은 누구의 가슴에나 들어 있지 않을까?

내면을 들여다보라. 인간의 공포를 먹고 자란 '균형 잡히고' 무시무시한 호랑이의 존재가 왜 없을까?

 

그것을 단면적인 율법을 초월하여 눈물, 웃음, 자각으로 버무려낸 '난 연쇄살인범이 아니다'. 존은 크롤리의 '사랑'을 이어받아 꽃다발을 들고 앉아 있다. 자신이 소멸시킨 연쇄살인범을 대신하여 사랑을 보호해주기 위해.

"인간은 무언가를 두려워하지만, 자신의 행동은 두려워하지 않죠."

우리는 이를 핑계로 무수한 죄를 짓고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