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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킨파크 뜻밖에 빠지다

 

린킨파크 [She couldn’t] vs [pale]

 

음악과의 만남은 신기할 정도로 짧은 순간 내에 이뤄진다. 막연히 제목으로만 존재하던 그것이 자체의 생명력을 띠고 다가오면 난 이미 굳어져 묻기 시작한다. ‘어째서 귀기울이는가?’

 

이 설레는 과정을 사랑에 비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차이가 있으니, 사랑은 표현하기가 쉬운 반면(사랑하면 수다쟁이가 되는 이치) 노래는 어렵다는 것. 나는 종종 날 현혹시킨 음악을 글로 표현하려 들다가 포기했다.

 

그렇다고 내가 많은 양에 반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빈약한 정도에 속할 것이다. 음악이란 포괄적이라 오해되곤 하나, 누군가에겐 꽤나 나누어 갖기 어려운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영역이다. 따라서 난 한 개의 이어폰을 나눠 낀 연인을 쉬이 믿지 않는다.

 

실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뒤 티 렉스(영국의 글램 록 밴드(1967~1977))의 자료를 실어 옮겼다. 더 잼(70년대 말 펑크 록 밴드)도. 눈치 빠른 분들은 아실 테지만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수록곡의 주인들이다. 물론 전부터 내가 좋아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듣고 있는 사이 너무 먼 곳까지 갔다는 판단이 섰다. 흔히 음악이 영상과 결합하면, 그 위에 스토리까지 더해지면 이전의 상태와는 확연히 달라지는 법. 영화를 떠난 티 렉스는 더 이상 시간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하여, 되풀이해 듣고 있던 사이 급격히 맥이 빠진 끝에 선곡을 바꾸었다. 린킨파크의 [She couldn’t]. 이 곡은 지난겨울 나를 환멸에서 구해준 곡이었다. 한 동안 들을 곡이 없다니, 게다가 겨울이었는데 말이다.

 

그럼 린킨파크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처음 그들을 접한 순간부터 내가 줄곧 주목했던 인물은 보컬인 체스터가 아니라 마이크 시노다였다. ‘틀림없이 마이크가 저들 사이의 브레인일 거야.’

 

내 얄팍한 추측에 의하면 체스터는 어딜 가더라도 체스터일 것이나, 시노다는 어딜 가더라도 린킨파크일 것이다. 무대 위에서 시야를 넓게 확보하고, 병풍처럼 체스터를 호위하듯 전체를 주관하고 이끄는 시노다. 그럼 체스터는 뭘 하냐고? 당연히 그는 타고난 주인공이다.

 

더 나아가자면 나는 이들의 팬도, 이들을 확연히 높게 평가해 온 사람도 아니다. 이들이 갖는 뚜렷한 특징들이 더러 약점으로 다가온 까닭이다. 거칠다, 강렬하다, 중첩적이다, 여백이 없다... 게다가 이건 부정하기 힘든 현실인데, 이들의 가사는 별반 주목할 만하지가 못하다. 대부분 동어반복에 그치는 상황. 그거야 시대의 흐름이 그러니까, 저 옛날 고풍스레 정련되었던 때와는 달라도 많이 달라진 것이다.

 

한편 이들은 지나치게 린킨파크 브랜드에 매몰돼 있음이 또한 내 주관적인 평가였다. 그들의 변주곡들은 변함없는 주제를 바탕으로 양산되었다. 파괴와 재생이라는.

 

그러나 어느덧 체스터가 사라지고 몇 년이 흐른 지금. 엊그제 난 불현듯 이리 속삭이지 않았던가?

 

“난 항상 린킨파크를 높게 여기지 않았어.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을 바꿔야 할 것만 같아. 언젠가 그들은 다시금 세상에 불려 나와 그 동안 가려졌던 천재성을 노출시키리라고.”

 

나로 하여금 참회하듯 이 말을 내뱉게 만든 곡은 무엇이었을까? [pale]이었다. 이 또한‘나는 왜 귀기울이는가?’를 찾고 있던 나. 이미 유튜브 영상의 하단에도 나처럼 매료된 사람들의 댓글투성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pale]이 왜 특별한가를. 그 답은, 그 곡엔 체스터가 없기 때문이었다. pale은 연주곡이었다. 그렇군! 나름 해답을 발견한 나는 조금 망설였다. 그러다가 [She couldn’t]로 돌아갔다. 당연하게도 미성의 체스터가 그 곡엔 있었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