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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본래의 색을 이겨내고 빨갛게 덧칠돼 있다.
창을 통해 들어왔다 나갔다를 거듭하는 볕은 날이 흐리거나 저녁이 되면 어딘가에 재사용된다.
모두는 완전히, 온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은 볕이 밝은 날이다.
나는 물감처럼 노란 꽃을 고른다.
약속도 아니다, 만남도 아니다, 허무의 그곳에 안타깝게 매달린 꿈이... 그 곁에 강물이 흐른다.
강물의 깊이는 500미터, 폭은 10미터쯤 될 것 같다.
길이는 짐작이 되지 않는 채로 수면 아래의 색을 가늠한다.
고요한 색.
버스 안은 사람들의 숨결로 탁해진다.
사실을 들을 것 같지 않다면 묻지 마라.
수초처럼 용수철 인형이 까닥인다.
이전과 다른 노선으로 한 시간 반 연착.
볕은 연장을 들고 찔러댄다.
다정했니?
일정하게 간격을 두고 앞서 걷는 그녀를 추격한다.
벌써 허리와 발목이 위축됐는데 이상하게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직선으로, 나는 커브를 돌며 힘겹게 이어간다.
더 빨리 멀어지세요.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이제 그녀는 노래를 부른다.
어릴 적 부엌에서 내가 들었던 노래가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그녀의 예쁨은 너무도 짧게 지나갔으나 이 순간 되살아난다.
버스에서 졸음이 온다.
볕의 아지랑이는 펼쳐지고 다시 닫혀지고.
강물까지는 더 길이 남아 있고, 허무의 그곳엔 꿈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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