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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중

아프기와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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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 내 눈은 무언가를 말하려 하고 있다.

거울 앞에 바짝 마주선 나는 주파수처럼 떨리는 그녀의 쇠약함만을 읽을 수 있을 따름이다.

눈의 정기라는 게 있다고 한다면, 그녀는 이미 많이 흐려져 있다. 그리고 그럴수록에 짙어져오는 호소력. 내 어리석은 귀는 그녀가 보내오는 메시지를 듣지 못한 채 맥 풀린 다리를 끌고 침대로 향한다.

책을 읽는다. 십 년 넘게 내버려둔 책을, 단지 아프다는 이유와 그걸 견뎌야 한다는 이유로 책장에서 꺼내어 눈 앞에 펼쳐두었다.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이를 잊고 지냈던 지난 시간이 형벌과 같다. 형벌이라고 처음으로 이름을 지어붙인다. 그러면서 거기에 몇 가지 핑계를 갖다 대지만, 모두 틀렸다. 나는 다라고까지는 못 해도 꽤 많은 부분을 내려놓자고 생각한다. 이 만큼만 해도 넘치도록 많이 받았다고도 거듭 깨닫는다.

책은 내게 해줄 수 있는 걸 다 해주었다. 날 찾을 수 있도록 해주었고, 무조건적인 기쁨도 부여했다. 그들과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요 며칠을 틈타 책의 새 장을 열고 있는 셈이다. 전체로 보아 삼 막이나 사 막쯤에 해당될까? 책갈피에서 스르르 마른 단풍잎이 흘러나왔다. 부서지지 않고 잘 보존돼 있다. 새롭게 도래한 책의 무대가 앞서의 무대들보다 짧을 것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에는 나를 침대에 묶어둔 질환과 그로 인한 재회에의 예정성이 흘러넘친다. 신은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설령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때일지라도 그 길로 나를 이끌어 현존을 드러낸다. 나는 뭔가로, 누군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줄곧 오늘을 기다려왔고 기어이 맞이하고 말았다.

그러기 위해 나는 아파야만 하는 기회를 얻었던 거야. 많은 걸 용서하고 받아들이자고 느낀다. 많은 걸 용서받아야 한다고도.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만 말해 줄 수 있다. 우린 함께 있고, 함께 할 거야. 난 준비가 되어 있어.

「내 안에 무언가 있어

내 몸을 치며 밖으로 나오고자 한다

어깨로 퉁퉁

견고한 내 몸에 미약할 정도로,

그러나 멈추지도 단념하지도 않는다.

나오려고

꺼내달라고 하는 무엇이 있다

나는 꺼낼 수 없고

안아줄 수도 위로할 수도

없다

그렇게, 느끼기만 한다

내 몸을 열고 싶다」

 

 

 2019. 1. 22.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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