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이터 - 어둠은 어둠을 빨아들인다
감독 얀 코마사, 폴란드, 범죄영화

언젠가 한번 적어보고 싶었는데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폴란드 감독 얀 코마사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낙점시킨 영화다.
관객에게 주인공을 감추고 목소리로만 등장시킨 첫 장면부터 이채로웠다.
주인공은 표절로 인해 교수들에게 심판을 받게 된 처지다.
출신이 변변찮고 가진 것 없는 그에게는 절대절명의 기로였으나, 그의 비굴할 만큼 자비를 구한 노력에도 돌아온 것은 되돌이킬 수 없는 처분이었다.
대학도 지원을 받아 가까스로 이어나가고 있던 그는, 더 버틸 힘과 명분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후,
영화의 후반에서 자신의 범죄 행각을 캐묻는 여자 수사관을 향한, 그의 대범하고도 날카로운 대응은 이전 사건이 남긴 상흔의 확인이다.
이렇듯 곳곳에 감독의 '떡밥'이 마련되어 훔쳐보는 재미를 키웠다.
예로, 행사에서 큰 딸의 손을 잡지 않았던 로베르트가 말미에 토메크의 손을 감싸 덮는 장면은 대조를 이룬다.
이는 악의 전승을 암시하는 것으로, 큰 딸은 제가 지닌 선량함으로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걸을 것이며 그로 인해 죄 없는 죽음을 당하리라는 예견인 것이다.
한편, 표절이 계기가 된 주인공의 그릇된 행각은 이후 우후죽순 커진다.
선은 대가가 늦게 나타나나, 악은 대가가 즉각적인 까닭이다.
또한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를 차지해야 한다는 집착적인 명분이 뚜렷했다.
그는 온라인에서의 여론 조작을 시작으로 로베르트 집안을 도청하는 등 걷잡을 수 없이 범죄에 발을 들인다.
제가 가진 모든 기회를 단 한 번의 실수에 의해 송두리째 빼앗긴 인물로서, 이제 그에게 남은 길은 이전과는 백팔십 도 달라진 '헤이터'로서의 앞날이었다.
영화의 구성은 그리 간단치 않다.
난민 문제, 인종 문제, 권력의 문제를 아우르는 동시 그의 주축이 된 거짓과 기만을 파헤친다.
특히 영화가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과 주변사람들 간의 윤리적인 줄타기이다.
주인공은 자각이 있는 사이코패스로서, 주변사람들은 자각이 없는 정상인들(혹은 꼭두각시)로서 그려지기 때문이다.
정상인들은 태생적으로 많은 걸 지니고 있지만 철두철미 제 가족, 제 이해관계에만 몰두하는 이기적인 모습들이다.
그러한 그들의 모순이, 내면이 공허한 주인공에게 뒤따라야 할 롤모델로서 제시된다는 점이 사회를 악순환으로 이끈다.
영화 속 희생당하는 인물(큰딸 및 시장 후보)들은 가장 선하고 무해한 사람들이다.
그에 반해 끝끝내 살아남는 사람들은, 주인공을 포함해 오히려 없느니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을 기만하고 물들이며 자신의 이득과 사회악을 추구한다.
끝으로, 동양사상과 속도감 있는 게임 장면도 영화의 다양성과 묘미를 키웠다.
재미 없고 시시한 장면이 1초도 없었던 것 같다.
바로 그 속도감이 영화의 깊이를 조금은 감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