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우- 섭취의 잔혹함
2016년 공포 / 드라마 / 프랑스 / 벨기에
감독 줄리아 듀코나우
주연 가렌스 마릴러, 엘라 룸프
그 해에 보았던 여성 감독의 작품들 가운데 손꼽는다면 '바바둑' 그리고 이 영화 로우이다. 신선한 재미로는 바바둑도 이에 뒤지지 않으나, 원시성과 충돌한 문명의 위태로움을 강렬하게 표현해 낸 로우는 충격적이었다. 날 것이라는 명제 앞에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던 듀코나우 감독의 오기를 맛보았던 건 나만이 아니었겠다.
내적 성장을 향해 가는 극 전개가 팽팽히 이어지는 가운데, 저변에 흐르는 여성의 아픔 또한 카메라는 짚어 냈다. 그간 억제해 온 충동이 크면 클수록 추락이 뒤따르는 광란 또한 비례해 가속이 붙는다.
여주인공은 유난히 앳된 인상을 풍기는 대학 신입생. 이제 곧 첫 성경험을 치르리라 암시되는 그녀는, 그 동안 집안의 기호에 따라 제한된 식습관을 따랐다. 우연히 낯선 세계의 입맛을 발견해 낸 그날부터 제 피 속에 숨어 있던 본성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것은 이 사회와 떳떳이 동행할 수 없는 것.
저스틴의 우수한 두뇌는 평범한 학생들로부터 그녀를 대별해 내고 있으나, 이는 모종의 무질서와 반항 기질로 압축된다. 명석함의 이면에 도사린 성적 욕구의 발산 또한 하나의 통과의례이다. 스스로를 억제하기 위한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본성이 이끄는 길로 내몰린다.
작품에 모인 각계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성장을 위한 치열한 각성을 다루고 있음은 물론, 인간 본성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육식과 채식이라는 틀을 빌려 인간이 오래도록 행해 왔던 살육 행위에 대해 불편한 관점을 제시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나름의 해석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도 로우가 지닌 매력이다. 불투명한 하늘 아래 잿빛 건물들 사이를 따라 걷는 한 음울한 소녀에게서 낯설고 충격적인 폭력성을 추출해 내기. 그 본성과 관람객들 사이에 유쾌하지 않은 접점이 마련될 때 로우는 본래 성과를 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