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중

얀 티에르상

작은참새 2022. 10. 9.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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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과 나 사이에는 거리감으로 채색된 저항감이 있다. 차이냐, 공통점이냐를 저울질하다 보면 어느새 멈추기 어려워진다. 추구가 시작되어서다.

 

 

얀은 반하기에는 부족하나 못 본 척 내버려둘 수는 없다. 탁월함이 졸렬함과 통한다면 그의 경우에 한해서다. 나는 왜 이런 괴상한 사고를 하는 걸까? 그에게 지배되지 않기 위한 저항감의 발로.

 

 

듣기에 있어, 크게 선회하는 시즌은 1년에 대략 몇 번이다. 계절이나 컨디션과는 무관하며, 일종의 초조감에 쫓긴 행위이다. 새로운 걸 찾지 않으면 정체된다는 내면의 요구는 그 얼마 전부터 줄기차게 나를 재촉해 왔다.

 

 

내면의 배열을 바꾸듯 차례대로 기호가 바뀐다. 돌아온 건 파란색. 인터넷 댓글을 그만뒀고, 옷감 따위에 찍힌 자잘한 도안들을 처음으로 견딜 수 있게 됐다. 에펠탑, 런던 이층 차, 줄지어 복제된 강아지 그림 등 무성의한 저렴함을 수용하게끔 됐다. 완벽 아니면 제로라는 감각에서 벗어났다고 보인다. 기운이 빠져서일 수도, 가치와 가치 사이의 상호작용에 흥미를 느껴서일 수도 있다. 어쨌건 이 의도치 않은 흐름을 '예정된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평온한 나날의 실핏줄이 툭툭 불거진다. 맺힌 데 없는 유영에 진한 피로를 느낀 근육들의 반란. 눈을 감으면 맹렬히 기세를 올리며 검은 연기가 밀려든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코디언. 밤의 절반 내내 얀의 연주는 위태롭게 반복된다. 지금 춤을 추는 건 죽은 자다. 발을 움직여야만 산 자로 보여지는 그녀.

 

 

자는 도중에 울린 핸드폰 신호음. 낯선 음성은 잘못 걸린 전화를 붙들고 놓지 않는다. 그는 외국인이고 1971년생이다. 전화기를 댄 왼쪽 귀의 하단에는 귀걸이 구멍이 방치돼 있다. 우물처럼 세월이 고이는 그곳을 들여다본다.

 

 

나는 말에 대해 말하고, 그는 말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나도 말에 대해 말하지 않고, 꽃에 대해 말한다. 내가 기르는 생각하는 꽃에 대해서다. 꽃은 얀을 듣는다. 내가 말한 말에 대한 말은 죽은 자를 불러내는 주문에 대해서였다. 

 

 

얀의 방은 싸구려 벽지가 둘려 있고, 새벽 내내 결로가 흐른다. 그의 책꽃이엔 권력에 관한 서적이 냄새를 풍기며 쇠락해 간다. 주위는 아주 깨끗하거나 더러운 상태를 오가는데 둘 다 그의 모습이다. 그가 벗어놓은 옷들은 커튼처럼 창을 가린다. 창 밖에서 시계탑의 바늘이 3시 55분을 가리킨다.

 

 

내가 잠드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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